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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도 남지 않는 성소수자의 죽음 2019-12-27 관리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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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

지난 10일 오후 4시22분, 제주의 한 병원에서 민정씨(가명)가 사망했다. 스물여섯살의 트랜스젠더였다. 우울증을 앓았다. 지난달부터 병원에 입원했다. 그날은 세계인권선언 71주년 ‘인권의날’이었다. ‘혐오와 차별 넘어 누구나 존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날의 구호는 민정씨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민정씨의 죽음을 성 정체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다. 성소수자의 죽음을 정체성과 연결 짓는 해석에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민정씨의 마지막 순간을 홀로 지킨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36)은 1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 지금도 모르는 죽음이 꽤 있을 거예요. 알지 못하는 죽음들. 어떤 죽음은 숫자로만 나타나서 슬프잖아요. 성소수자의 죽음은 숫자로도 안 나타나요. 이들의 존재가 기록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민정씨는 지난달 중순 김 위원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인 셈이다. “고마워요, 우리 언니. 마지막에 상담해주셔서 그 덕에 반년 이상을 더 살았어요. 제가 우리 언니 생일에 미역국 한번 더 끓여먹일 수 있었어요.” 민정씨는 성소수자와 장애인이 취업할 수 있도록, 이들이 자살하지 않도록 정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출마한 김 위원장은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꿈꾼다. 

김 위원장은 민정씨를 2년 전 트랜스젠더 모임에서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같은 제주도민이라는 인연으로 언니·동생 사이로 지냈다. 민정씨가 병원에 남긴 노트를 펼치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김 위원장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다. 

민정씨는 수년 전부터 자신의 아버지, 애인인 지희씨(가명)와 함께 살았다.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인 아버지는 이들에게 종종 폭력을 가했다. 가족 대부분은 민정씨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은 민정씨가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에 따른 어려움도 홀로 감당해야 한다고도 했다. 

성소수자의 취업은 쉽지 않다. 같은 성소수자인 지희씨도 마찬가지였다. 성전환 수술 뒤 성별정정을 하지 못한 지희씨는 뇌전증을 앓는 장애인이기도 했다. 카드빚이 쌓였고 신용불랑자가 됐다. 카드사에서 독촉이 빗발쳤다. 지희씨는 일자리를 겨우 구했지만 출근 첫날 숨졌다. 민정씨는 특기인 고등어조림을 지희씨에게 해먹이지 못한 걸 후회했다. 

민정씨와 같은 성소수자들은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높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 등이 2017년 10월 발표한 ‘한국 동성애자·양성애자의 건강불평등’ 논문에 따르면 동성애·양성애자 남성(생물학적 기준) 집단은 전체 평균에 비해 7.13~7.16배 우울증 유병률이 높았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사회적 소수자 혐오표현이 문제로 부상한 환경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부정적 경험은 이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민정씨가 병원에 남긴 노트에는 꿈과 바람이 담겨 있다. ‘나의 회복 단계’를 묻는 질문에 “8단계(가장 좋은 상태) 중 2~4단계(혼란과 충격 부정을 느끼는 상태) 하루에도 수백번”이라고 적었지만 ‘회복이 된 나의 모습’을 두고는 이렇게 썼다. “더 이상 겁내지 않고, 그 사람과 나의 바람들을 이루어 나간 뒤,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또는 그리움과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생을 마감한다.” ‘인생 버킷리스트’에는 “호적정정, 누구보다 당당하고 마음이 예쁜 여성으로 살아보기, 자존감 높이고 더 자책 말기, 우리 다시 만나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자주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마주한다. 한 달에 몇 번씩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가 이들 곁을 지키는 게 일상이 됐다. 그는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성소수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들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주민등록증에 성별을 표기하는 것도 사라져야죠. 성별정정이 조금 더 쉬워져야 하고요. 존엄을 침해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다들 인식해야 합니다.” 민정씨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는 이런 말을 전했다. “그냥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당신들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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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씨(가명)가 제주의 한 병원에 남긴 노트.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제공

 

경향신문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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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20600011&code=940100#csidx1016ba66704ecc3af8022753bafbb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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